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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도전기

여러분들은 참혹한 학살극 박사리 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유튜브 도전기 2

by 불나무 2020. 11. 6.

긴 글을 읽기 귀찮으신 분들은 글 아래 영상 링크를 통해 영상으로 시청해주세요!

 

 

그 사건은 19491129일 밤에 일어났다.

총과 죽장, 긴 칼을 든 검은 그림자들이 마을을 점령했다.

그들은 중요한 연설을 한다며 사랑방에서 놀고 있던 청·장년을 끌고 나왔다.

총알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먼저 몽둥이로 뒤통수를 치고 뒤이어 일본도를 휘둘렀다.

위 내용은 박기옥씨가 적은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라는 책의 서문의 일부분입니다.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 서장 中-

여러분들은 박사리 사건을 알고 계시나요?

많은 분들은 처음 들으실 수도 있고, 몇몇 분들은 이름을 알지만 어떤 사건인지 정확히 모르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모든 비극은 경산시 와촌면 박사리 인근 팔공산에서 산길을 가던 주민이 빨치산 무리에게 잡히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빨치산 무리들은 주민에게 당신들을 봤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받고 그를 풀어주었지만

도망친 주민을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를 하였습니다. 그의 신고로 군경합동 토벌작전이 벌어졌고,

빨치산 무리

그로부터 한 달 뒤 빨치산 잔당들은 자신들을 신고했던 주민이 엉겁결에 박사리에 산다라는 말을 했던 것을 토대로 운문산 공비의 지원을 받아 마을을 상대로 대대적인 보복에 들어갔고 그 마을은 유례가 없을 정도의 살육과 방화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날 밤 동네의 38명의 청년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28명도 중상을 입어 평생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불을 질러 108채의 집이 전소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그 뒤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밤 8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빨치산 잔당 50명이 저지를 학살극입니다

 

1949년는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지 고작 1년이 지난 해이고, 6.25전쟁이 일어나기 불가 1년 전인 해입니다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

전쟁 중에도 양민 학살과 방화는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로 처벌받는데 언뜻 보면 나라가 안정이 되어가려고 하는 차에 전쟁도 아니고, 폭동도 아닌 그저 일반적인 학살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신 분들 중 이런 의문을 가지신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빨치산이 뭔데?"라고 말이죠.

빨치산이란 러시아어 파르티잔을 우리 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원래는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 유격대를 뜻합니다.

실제 러시아 파르티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 전후에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으로 통하며 흔히 조선 인민 유격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북한의 김일성도 20대였던 1930년대 한일 빨치산 부대를 창설해 활동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사건을 네이버에 검색을 하면 경산시립박물관에 짤막하게 설명만 되어있을 뿐 다른 자료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를 적은 박기옥 씨의 인터뷰에 의하면 국가기록원과 경북지방경찰청, 경산 경찰서 등에 기록을 요청하였지만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시일이 너무 오래돼 폐기됐거나 관리 소홀로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당시 동아일보와 남산 경제에서 기사를 찾아냈으나 오류가 꽤 있었다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이 마을에서는 매년 1030일 추모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는 동네 어르신 스물댓 명과 자유총연맹 지부 사람들 몇몇만 참가할뿐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난 10월 30일 합동 추모제

이것은 단지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이 사건이 사람들과 세상에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2020년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 비극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오셔서 많은 시청과 좋아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M-sOAgpP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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